2005년 01월 11일
프랑스문학-고리오 영감(Le Pere Goriot)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프랑스 문학을 아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이름은 들어보셨을, 19세기의 풍속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인, 고리오 영감입니다. 전 사실 빅토르 위고의 충실한 신봉자입니다만, 대학에서 문학 강의 중에 이 책의 설명을 들으며 '꾸미지 않는 문학의 신랄함'을 가슴 속 깊이 체험했었지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고리오 영감은, 원래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사회혼란을 틈타 고가로 곡물을 매매하여 거액의 부를 축적한 사람이자, 일찍 아내를 잃고 두 딸에게 온 정성을 기울이다 결국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대혁명 이후의 혁명정부, 나폴레옹의 제정, 부르봉 왕조의 왕정복고의 격동기를 거쳐 부를 쌓고 아이들을 귀족에게 시집보낸 파란만장한 사나이의 인생 말로치고는 참 쓸쓸한 죽음이지요.
이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라스티냐크는 법학을 공부하러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온 가난한 학생입니다만, 귀족가의 부인인 먼 친척의 연을 빌어 상류계급의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출세에 대한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당시 사회의 온갖 추악한 부분에 정면으로 맞부딪히게 됩니다. 거짓과 위선, 아첨과 허영이 난무하는 당시의 사교계를 발자크는 실로 생생한 단어와 문장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지요.
혼란한 18, 19세기를 통해서 부를 축적했지만, 결국 두 딸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정작 자신은 초라한 하숙방에서 죽어간 고리오 영감을 바라보며, 저는 문득 모든 시대를 통해 자녀에 대해 헌신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정작 자신은 고기 한조각 입에 못대면서 딸들을 위해 종신연금을 잘라서 주는 그 모습에서, 고리오 영감의 묘지 앞에 서서 눈물 흘리는 라스티냐크의 마음에 크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지요. 과연 나는 부모님께 어떠한 자식인가하는 생각도 다시금 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뒤로 하고서 오로지 화려한 사교계와 출세에 대한 열망만을 지니고 있는 라스티냐크의 모습에서도, 오로지 부와 명예를 쫓고자 하는 오늘날의 젊은이(저를 포함한)들의 허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젊은이들은 패기넘치고 망상가이지만, 그것을 이렇게 생생히, 적나라하게 표현해내는 것은 발자크의 문학적 재능이겠지요.
실제로 발자크는 초기에 써낸 작품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인쇄소를 비롯한 여러 사업에 손을 댔습니다만, 결국 모조리 실패하고서 큰 빚을 떠안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그로 하여금 금전에 관한 강박적인 집착을 작품 속에서 그려내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고리오 영감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금전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작가의 그러한 무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제가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건 19세기의 파리 사교계에 대한 생생한 묘사 때문이었습니다. 발자크는 일생 동안의 작품에서 민중보다는 부르주아나 귀족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많이 다루어왔는데요. 근대 유럽 귀족문화에도 관심이 많은터라 '고리오 영감'의 흡인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앉아서 미동도 않고 2시간 동안 내리 읽었으니까요).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 있는 메인테마는 '돈과 명예에의 집착에 대한 조소'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그 반면에 작중에서 그려지는 또 하나의 주제가 '그러한 집착에 대한 환상의 조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상반된 주제입니다만, 이는 발자크 자신이 19세기 프랑스 사회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기조로 한 작품 창작에 몰두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발자크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19세기의 프랑스를, 한조각 가식도 없는 알몸과도 같은 상태의 생생한 형식으로 작품 속에 표현하려고 하였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있어서 가식이나 폄하가 아닌 상류계급사회의 환상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상류계급이 종시 추구하던 것은 돈과 명예에 대한 환상 바로 그 자체였으니까요).
상기의 서술에 근거하여 발자크는 19세기 작가로서의 '근대성'을 십분 구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속과 사회를 분석하고 연구하려는 발자크에게 있어서 17세기 고전주의자들의 세련되고 정제된 단어와 문체는, 결코 맞지 않았습니다. 발자크는 작품을 쓰기 위해서 당시의 은어나 속어를 광범위하게 집어 넣었고, 심지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당대의 비평가들로부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혹평을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당대의 지각있는 문인들로부터는 많은 찬사를 받았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달까요.
당대의 여러 문인들은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시류 속에서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차례차례 바꾸어 나갑니다만(귀족적 보수주의자 라마르틴이 1843년 공화주의자가 되고, 위고가 1849년 좌파로 변신하는 등), 발자크는 자신의 카톨릭과 입헌왕정을 지지하는 정통주의적 노선을 고수합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작품 속에서 민중 계급인 농민들에 대한 생물학적 조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즉, 좌파적 이념에서 조명된 민중계급의 미화가 아닌, 오로지 리얼리즘적 시각에서 조망된 민중의 모습이 원래 부르주아 출신인 발자크의 귀족적 시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러한 귀족적 성찰이 그의 자아 비판, 통찰의 한 도구로서 현실 인식의 기초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신의 입장을 프리즘으로 삼아 사회를 바라보며 자신을 비판하는 태도랄까요.
결국 그는 귀족적 시각을 통해 당시 상류계급이 주도하는 사회를 통렬히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부르주아와 농민과의 역학적 관계, 그리고 프랑스의 박살난 농촌사회와 그 원인을 제공한 부르주아를 위시한 상류계급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상류계급이 몰락하는 역사적 필연을 냉혹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발자크 자신이 지니고 있던 반동적 성향이 혁명성으로 바뀌어가는 순간의 도정이기도 합니다.
결국 발자크는 프랑스 문학사에 있어서 '나폴레옹'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대의 어느 작가들보다도 '시대의 정신'에 주목하고 집착한 작가였습니다. 그는 '체계'로서의 사회에서 움직이는 '기능'으로서의 인간을 그려냄으로서 자신이 눈 앞에 직시하고 있는 시대, 그 동시대로서의 사회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비판하고, 변혁을 꾀했습니다.
저는 사물에 대한 분석을 근본으로 한 글을 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학은 인간의 감성에도 호소하는 온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를, 미우라 아야코를, 메이 올코트를 좋아하지요. 하지만, 발자크와 같은 철저한 분석적, 비판적 사고로 일관한 문학작품도 분명 이 세상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발자크와 같은 작가가 오늘날과 같은 시대와 딱맞는 성향의 작가일지도 모르지요. 쪼개고 쪼개어 더이상 나뉘어질 수 없는 수준에까지의 철저한 분석,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문학의 방식이고, 또한 발자크의, 그리고 모든 시대에 있어서의 비판적 문인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도 발자크처럼 훌륭한 작품을 써보고 싶군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고리오 영감은, 원래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사회혼란을 틈타 고가로 곡물을 매매하여 거액의 부를 축적한 사람이자, 일찍 아내를 잃고 두 딸에게 온 정성을 기울이다 결국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대혁명 이후의 혁명정부, 나폴레옹의 제정, 부르봉 왕조의 왕정복고의 격동기를 거쳐 부를 쌓고 아이들을 귀족에게 시집보낸 파란만장한 사나이의 인생 말로치고는 참 쓸쓸한 죽음이지요.
이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라스티냐크는 법학을 공부하러 시골에서 파리로 올라온 가난한 학생입니다만, 귀족가의 부인인 먼 친척의 연을 빌어 상류계급의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출세에 대한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당시 사회의 온갖 추악한 부분에 정면으로 맞부딪히게 됩니다. 거짓과 위선, 아첨과 허영이 난무하는 당시의 사교계를 발자크는 실로 생생한 단어와 문장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지요.
혼란한 18, 19세기를 통해서 부를 축적했지만, 결국 두 딸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정작 자신은 초라한 하숙방에서 죽어간 고리오 영감을 바라보며, 저는 문득 모든 시대를 통해 자녀에 대해 헌신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정작 자신은 고기 한조각 입에 못대면서 딸들을 위해 종신연금을 잘라서 주는 그 모습에서, 고리오 영감의 묘지 앞에 서서 눈물 흘리는 라스티냐크의 마음에 크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지요. 과연 나는 부모님께 어떠한 자식인가하는 생각도 다시금 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뒤로 하고서 오로지 화려한 사교계와 출세에 대한 열망만을 지니고 있는 라스티냐크의 모습에서도, 오로지 부와 명예를 쫓고자 하는 오늘날의 젊은이(저를 포함한)들의 허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젊은이들은 패기넘치고 망상가이지만, 그것을 이렇게 생생히, 적나라하게 표현해내는 것은 발자크의 문학적 재능이겠지요.
실제로 발자크는 초기에 써낸 작품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인쇄소를 비롯한 여러 사업에 손을 댔습니다만, 결국 모조리 실패하고서 큰 빚을 떠안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그로 하여금 금전에 관한 강박적인 집착을 작품 속에서 그려내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고리오 영감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금전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작가의 그러한 무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제가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건 19세기의 파리 사교계에 대한 생생한 묘사 때문이었습니다. 발자크는 일생 동안의 작품에서 민중보다는 부르주아나 귀족에 대한 이야기를 훨씬 많이 다루어왔는데요. 근대 유럽 귀족문화에도 관심이 많은터라 '고리오 영감'의 흡인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앉아서 미동도 않고 2시간 동안 내리 읽었으니까요).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 있는 메인테마는 '돈과 명예에의 집착에 대한 조소'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그 반면에 작중에서 그려지는 또 하나의 주제가 '그러한 집착에 대한 환상의 조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상반된 주제입니다만, 이는 발자크 자신이 19세기 프랑스 사회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기조로 한 작품 창작에 몰두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발자크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19세기의 프랑스를, 한조각 가식도 없는 알몸과도 같은 상태의 생생한 형식으로 작품 속에 표현하려고 하였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있어서 가식이나 폄하가 아닌 상류계급사회의 환상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상류계급이 종시 추구하던 것은 돈과 명예에 대한 환상 바로 그 자체였으니까요).
상기의 서술에 근거하여 발자크는 19세기 작가로서의 '근대성'을 십분 구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속과 사회를 분석하고 연구하려는 발자크에게 있어서 17세기 고전주의자들의 세련되고 정제된 단어와 문체는, 결코 맞지 않았습니다. 발자크는 작품을 쓰기 위해서 당시의 은어나 속어를 광범위하게 집어 넣었고, 심지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당대의 비평가들로부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혹평을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당대의 지각있는 문인들로부터는 많은 찬사를 받았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달까요.
당대의 여러 문인들은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시류 속에서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차례차례 바꾸어 나갑니다만(귀족적 보수주의자 라마르틴이 1843년 공화주의자가 되고, 위고가 1849년 좌파로 변신하는 등), 발자크는 자신의 카톨릭과 입헌왕정을 지지하는 정통주의적 노선을 고수합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작품 속에서 민중 계급인 농민들에 대한 생물학적 조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즉, 좌파적 이념에서 조명된 민중계급의 미화가 아닌, 오로지 리얼리즘적 시각에서 조망된 민중의 모습이 원래 부르주아 출신인 발자크의 귀족적 시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러한 귀족적 성찰이 그의 자아 비판, 통찰의 한 도구로서 현실 인식의 기초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신의 입장을 프리즘으로 삼아 사회를 바라보며 자신을 비판하는 태도랄까요.
결국 그는 귀족적 시각을 통해 당시 상류계급이 주도하는 사회를 통렬히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부르주아와 농민과의 역학적 관계, 그리고 프랑스의 박살난 농촌사회와 그 원인을 제공한 부르주아를 위시한 상류계급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상류계급이 몰락하는 역사적 필연을 냉혹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발자크 자신이 지니고 있던 반동적 성향이 혁명성으로 바뀌어가는 순간의 도정이기도 합니다.
결국 발자크는 프랑스 문학사에 있어서 '나폴레옹'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대의 어느 작가들보다도 '시대의 정신'에 주목하고 집착한 작가였습니다. 그는 '체계'로서의 사회에서 움직이는 '기능'으로서의 인간을 그려냄으로서 자신이 눈 앞에 직시하고 있는 시대, 그 동시대로서의 사회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비판하고, 변혁을 꾀했습니다.
저는 사물에 대한 분석을 근본으로 한 글을 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학은 인간의 감성에도 호소하는 온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를, 미우라 아야코를, 메이 올코트를 좋아하지요. 하지만, 발자크와 같은 철저한 분석적, 비판적 사고로 일관한 문학작품도 분명 이 세상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발자크와 같은 작가가 오늘날과 같은 시대와 딱맞는 성향의 작가일지도 모르지요. 쪼개고 쪼개어 더이상 나뉘어질 수 없는 수준에까지의 철저한 분석,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문학의 방식이고, 또한 발자크의, 그리고 모든 시대에 있어서의 비판적 문인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도 발자크처럼 훌륭한 작품을 써보고 싶군요.
# by | 2005/01/11 14:55 | 그냥 잡담 | 트랙백(1) | 덧글(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Phentermine cheap.
Cheap phentermine. Cheap phentermine cod....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