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7일
프랑스문학-악의 꽃(Les Fleurs du Mal)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시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물론, 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다는 분들도 한번쯤은 제명을 들어보셨을, 샤를르 보들레르(Charles Beadelaire)의 악의 꽃(Les Fleurs du Mal)입니다. 이 '악의 꽃'이라는 제명은 프랑스 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제명 중 하나라는 비평이 있을 정도로 실로 보들레르 자신의 생애와, 시집 속의 시들을 잘 대표하는 이름이지요.
사실 샤를르 보들레르라는 사람은 살아서 그의 문학적 재능을 거의 인정받지 못한 불운의 인물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재혼한 아버지와는 끝내 친해지지 못한 채, 몇번의 사랑과 이별, 금치산자가 되는 등의 경제적 곤란과 만년에서의 매독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고루 겪은 불우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인생의 독과 꽃을 한권의 책으로 압축해낸 것이 이 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의 서두이자 가장 먼저 나와있는 '독자에게'라는 시는, 원래 '서시'라는 제목이었지만, 61년에 재판되어 나오면서 따로이 '독자에게'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여기에서 독자는 이 악의 꽃이라는 시집의 가장 중요한 테마이자 그의 인생을 지배한 가장 큰 요인인 '권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권태(ennui)'는 우리가 흔히 느끼는 일이나 공부하기 싫다라든지, 피로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게되는 절망과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해서 생기게 되는 죄악과 체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들레르는 성서에서 말하는 7대죄악을 동물에 비유해 공포의 상징으로 다루면서 그보다 더한 악을 이 '권태'라고 독자들에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의 형제여!'라는 말을 하며, 독자들도 이런 세계에 고립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함께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보들레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의 절망과 권태를 극복해나가려는 희망의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들레르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친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유년시절만이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성장한 그를 이상성욕과 끝없는 미지에의 향수에로 이끈 주원인이겠지요. 그의 냄새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는데, 그것은 그가 유년시절에 아름답게 차려입은 어머니의 향수와 옷냄새에서 강렬한 성적충동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성장한 후에도 그대로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에의 초대'에서 보들레르는 그가 이상향으로 여기는 북구와 중국이 혼합된 '코카뉴나라'라는 이상향의 모습을 그리며,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로움, 고요함, 관능이 어우러진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유년시절에의 기억에 대한 끝없는 향수이며, 사실상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의 한없는 갈망의 현현이기도 합니다. 기실 한국어로는 '여행에의 초대'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래는 '초대'가 아니라 '유혹'이라고 해야할까요? 사실 보들레르는 이 시에서 여행을 떠나려는 마음은 있지만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그의 여행에의 욕구는 언제나 마음에서 그치지요. 실제로 보들레르는 브뤼셀에서의 생활을 제외하면 거의 파리에서만 줄곧 살았습니다. 그는 여행하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자신의 상상 속의 이상향을 최종적인 여행의 목적지로 삼고 계속 제자리 걸음의 여정을 감행하고 있었다고 할까요.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보들레르]라는 저서를 통해 그가 지닌 보들레르관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보들레르라는 사람에 대한 동경과 열등의식(좀 지나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 책을 씀으로서 그를 분석, 초월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보들레르의 생애를 하나하나 뜯어 분석하면서 그의 작품과 행동, 사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석을 많은 증거자료를 통해 수행하며 철저히 보들레르의 인생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2주일이 넘는 시간을 들여서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사르트르의 한문장 한문장이 자신의 보들레르 초월원망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정도적 수준으로서의 단어와 문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857년 초판된 악의 꽃은 당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혐의로 벌금형과 시 6편을 삭제하는 처벌을 받았으나, 이는 악의 꽃을 다시 한번 정제하고 세련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61년에 출간된 제2판은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2판에서의 악의 꽃은 좀더 우울한, 좀더 어두운 시집으로서 탈바꿈합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로 유명한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hier)에게 바치는 악의 꽃 서문에서 그는 '악의 꽃'을 '병든 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Mal'이라는 말이 '악'으로도 '병'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표현이지만, 진정 이 책이야말로 병든 꽃이라는 배덕적인 의미의 단어조차 어울리는 시집이 아닐까 하네요. 우울과 이상(Spleen et Ideal)편에 수록된 우울(Spleen)의 4번째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암울한 마음이 가슴 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테니까요.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읽어 봤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속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미와 감정이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지고의 환희와, 나락에 떨어지는 듯한 극도의 우울을 동시에 싣고 있는 악의 꽃에서 과연 여러분은 어떤 감상을 받으셨나요? '읽는다'라는 행위 자체를 넘어선 '이해한다'라는 개념에서의 악의 꽃은 결코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차원의 시집이 아닐 것입니다...
사실 샤를르 보들레르라는 사람은 살아서 그의 문학적 재능을 거의 인정받지 못한 불운의 인물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재혼한 아버지와는 끝내 친해지지 못한 채, 몇번의 사랑과 이별, 금치산자가 되는 등의 경제적 곤란과 만년에서의 매독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고루 겪은 불우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인생의 독과 꽃을 한권의 책으로 압축해낸 것이 이 책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의 서두이자 가장 먼저 나와있는 '독자에게'라는 시는, 원래 '서시'라는 제목이었지만, 61년에 재판되어 나오면서 따로이 '독자에게'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여기에서 독자는 이 악의 꽃이라는 시집의 가장 중요한 테마이자 그의 인생을 지배한 가장 큰 요인인 '권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권태(ennui)'는 우리가 흔히 느끼는 일이나 공부하기 싫다라든지, 피로감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게되는 절망과 공포, 그리고 그로 인해서 생기게 되는 죄악과 체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들레르는 성서에서 말하는 7대죄악을 동물에 비유해 공포의 상징으로 다루면서 그보다 더한 악을 이 '권태'라고 독자들에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의 형제여!'라는 말을 하며, 독자들도 이런 세계에 고립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함께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보들레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의 절망과 권태를 극복해나가려는 희망의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들레르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친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유년시절만이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성장한 그를 이상성욕과 끝없는 미지에의 향수에로 이끈 주원인이겠지요. 그의 냄새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는데, 그것은 그가 유년시절에 아름답게 차려입은 어머니의 향수와 옷냄새에서 강렬한 성적충동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성장한 후에도 그대로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에의 초대'에서 보들레르는 그가 이상향으로 여기는 북구와 중국이 혼합된 '코카뉴나라'라는 이상향의 모습을 그리며,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로움, 고요함, 관능이 어우러진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유년시절에의 기억에 대한 끝없는 향수이며, 사실상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의 한없는 갈망의 현현이기도 합니다. 기실 한국어로는 '여행에의 초대'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래는 '초대'가 아니라 '유혹'이라고 해야할까요? 사실 보들레르는 이 시에서 여행을 떠나려는 마음은 있지만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그의 여행에의 욕구는 언제나 마음에서 그치지요. 실제로 보들레르는 브뤼셀에서의 생활을 제외하면 거의 파리에서만 줄곧 살았습니다. 그는 여행하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자신의 상상 속의 이상향을 최종적인 여행의 목적지로 삼고 계속 제자리 걸음의 여정을 감행하고 있었다고 할까요.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보들레르]라는 저서를 통해 그가 지닌 보들레르관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보들레르라는 사람에 대한 동경과 열등의식(좀 지나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 책을 씀으로서 그를 분석, 초월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보들레르의 생애를 하나하나 뜯어 분석하면서 그의 작품과 행동, 사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석을 많은 증거자료를 통해 수행하며 철저히 보들레르의 인생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2주일이 넘는 시간을 들여서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사르트르의 한문장 한문장이 자신의 보들레르 초월원망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정도적 수준으로서의 단어와 문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857년 초판된 악의 꽃은 당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혐의로 벌금형과 시 6편을 삭제하는 처벌을 받았으나, 이는 악의 꽃을 다시 한번 정제하고 세련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61년에 출간된 제2판은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서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2판에서의 악의 꽃은 좀더 우울한, 좀더 어두운 시집으로서 탈바꿈합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로 유명한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hier)에게 바치는 악의 꽃 서문에서 그는 '악의 꽃'을 '병든 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Mal'이라는 말이 '악'으로도 '병'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표현이지만, 진정 이 책이야말로 병든 꽃이라는 배덕적인 의미의 단어조차 어울리는 시집이 아닐까 하네요. 우울과 이상(Spleen et Ideal)편에 수록된 우울(Spleen)의 4번째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암울한 마음이 가슴 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테니까요.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읽어 봤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속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미와 감정이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지고의 환희와, 나락에 떨어지는 듯한 극도의 우울을 동시에 싣고 있는 악의 꽃에서 과연 여러분은 어떤 감상을 받으셨나요? '읽는다'라는 행위 자체를 넘어선 '이해한다'라는 개념에서의 악의 꽃은 결코 쉽게 얘기할 수 있는 차원의 시집이 아닐 것입니다...
# by | 2004/12/27 17:27 | 문화 인생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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